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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주변을 더욱 풍성하게: 2022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공연]

seoulfringe2024-04-035

박현영 에디터= 8월 28일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막을 내렸다. 1998년 대학로의 '독립예술제'에서 출발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연극, 음악, 무용, 퍼포먼스, 시각이나 영상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축제다. 독립예술가의 자유로운 시도와 주체성을 지지하는 예술축제인만큼, 자유참가에 원칙을 두고 있다. 예술가나 작품에 대한 심사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와 도전을 볼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매년 여름 진행하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자원활동가 '인디스트'의 역량이 중요한 축제다. 인디스트들은 축제 기획, 아티스트 지원, 홍보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다. 공연을 중심으로 한 독립예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인디스트로 활동하면서 서울 프린지페스티벌의 다양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축제를 만들어가는 일원으로 함께 할 수 있었다. 인디스트 활동을 통해 느낀 점을 중심으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갖는 독특한 매력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장르부터 주제까지, 실험적인 작품들의 총집합

예술을 보여줄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프린지페스티벌에서는 좀 더 다채로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일반적인 무대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생소한 퍼포먼스가 곳곳에 존재한다. 공연하면 뮤지컬, 연극, 콘서트만 떠오르던 나에게는 보다 넓고 깊게 공연에 대해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장르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엘리펀트 메모리의 <세그>와 팔꿈치의 활동범위 <밤이면 밤마다 밤섬>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엘리펀트 메모리는 이머시브형 공연이다. 이머시브형 공연은 관객의 참여를 기반으로 전개되는 퍼포먼스를 의미하며, 관객과 무대 간의 경계가 해체되는 공연이다. 화장실을 연상케하는 공간에 입장한 관객들은 QR코드를 통해 웹사이트에 접속한다. 사랑의 감정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적는다. 이후 기록의 집약체 AI데이터, 기록의 집약체 AI는 관객의 답변을 바탕으로 주변 사물을 통해 답변을 형상화한다. 관객의 참여가 필수적을 즉흥적으로 이끌어가는 매력이 돋보이는 퍼포먼스다.

북극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창작집단, 팔꿈치의 활동범위 <밤이면 밤마다 밤섬>은 팝업씨어터 공연이다. 팝업씨어터 공연은  카페, 공원 등 일상적 공간에서 돌발적으로 펼쳐지는 팝업형태의 공연을 일컫는다. 일종의 거리예술인 셈이다. <밤이면 밤마다 밤섬>은 터전을 잃은 생물종이 떠도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너프라운지 지하에서 공연을 선보이던 이들은 돌연 극장을 뛰쳐나간다. 관객들은 길거리로, 밤섬 산책로로, 신수 전체 지역으로 무대가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작품이 극장 밖으로 튀어나오는 입체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단 장르에서만 실험적인 정신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다. 공연이 갖는 주제 의식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린지페스티벌에는 자아를 깊게 탐구한 주제가 드러나는 작품들이 많았다. 퀴어, 페미니즘, 장애 등 소수자를 중심으로 한 주제들도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으로 논의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기후 위기'를 다루던 작품들에 눈길이 갔다. 익살스럽고 재치 넘치는 연극으로 인류세를 이야기하는 낫아이의 <인류세>나 좀 더 다층적으로 기후 위기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다층적인 인물들을 통해 연대의 방법을 고안하는 보노보 프로젝트의 <우리가 남기는 흔적의 문양들>이 떠오른다.


공간 자체의 매력에 주목하게 되는 축제

2022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또 하나의 매력은 공간 활용이다. 상암월드컵경기장, 문화비축기지를 적극 활용하던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작년부터 마포구, 서대문구에 포진된 다양한 공간들로 눈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신촌동, 연희동, 신수동, 망원동의 총 12개의 공간을 무대로 활용했다. 플롯PLOT, 아트스페이스 블루스크린 등 기존의 전시 공간이나 극장을 활용하기도 하고, 이너프라운지, 연희예술극장과 같은 복합문화공간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파랑고래 앞마당과 바람산어린이공원 등 야외 공간이 있다.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작품들이여도, 장르가 다양하다 보니 공간의 활용 방식이 전혀 달라졌다.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작품이어도 장르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공간이 갖는 특색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공연을 보는 재미도 존재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몸소리말조아라센터'다. 몸소리말조아라센터는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예술가 조아라의 창작 공간이자, 그가 일상을 영위하는 가정집이기도 하다. 주방, 부엌, 서재부터 화장실까지. 그야말로 누군가의 터전이 되는 공간이 곧 무대로 활용되는 것이다. 몸소리말조아라센터에서는 공연 도중, 두 마리 반려묘 메추리와 조타를 볼 수 있다. 몸소리말조아라센터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위한 특정한 공간으로 변모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던 장소다. 무대를 위한 장소로서만 역할을 하지 않고, 축제 이전부터 공간에 담겨 있던 생생한 삶과 개성이 전달되는 느낌을 주었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

프린지 페스티벌을 구성하는 것으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건 바로 자원활동가 '인디스트'다. 인디스트 역시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면접 없이 간단한 인터뷰를 통해 모두 선발될 수 있다. 이들에게는 페스티벌에 열심히 참여하고자 하는 열정과 자신을 부르는 닉네임만이 필요하다.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것이 주는 자유로움이 존재했다. 이름, 나이, 성별 등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들에 대해 서로 거치지 않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소통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닉네임을 선정한 이유만으로도 처음 본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인해 어떤 인디스트와도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음을 마주했다.

페스티벌을 하면서 놀랐던 건 인디스트의 수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인디스트가 없다면 페스티벌이 진행되기 어려울 정도로 자원활동가들의 역량이 중요하다. 인디스트는 작품의 관객이 되기도 하고, 아티스트의 서포터가 되기도 하면서 페스티벌을 꾸리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관객들은 곧 페스티벌을 꾸리는 주도적인 역할을 행할 수 있다는 소리와도 같다.

fringe는 '가장자리의, 경계의'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구심점이 되는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가 어울리는 단어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려면 무언가로부터 종속되지 않아야 하고,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중심으로부터 벗어나야 독립적인 것이 가능해진다. 독립적이라는 단어는 자립적이고 자주적이며, 자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중심부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미세한 타격에도 부서지거나 흩어지기 십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올해 처음 프린지페스티벌을 알게 되어 인디스트를 지원한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오래전부터 프린지페스티벌의 일원으로 함께 해 온 인디스트들 또한 많았다. 축제가 끝나고 나니, 계속해서 프린지페스티벌을 찾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혼자서는 위태로울 수 있는 독립예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프린지페스티벌의 매력에 나 또한 빠졌기 때문이다. 가장자리에서도 다양한 사람들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든든했다. 결국 독립예술도 예술이며, 예술 역시 삶과 삶의 소통임을 믿는 나에게 인디스트 활동을 하면서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페스티벌 내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이 아닐까 싶다.

예술을 매개로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은 사람, 혹은 색다른 예술을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 혹은 능동적으로 예술 현장을 스케치하고 싶은 사람. 이중에 자신이 하나라도 속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이에게 프린지 페스티벌을 꼭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