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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월드컵경기장 안에서 보낸 한 달' 금주의 문화예술인-오성화

seoulfringe2015-08-071108

“끊임없이”는 오성화 대표가 자주 쓰는 말이다. 지난 13년. 그는 끊임없이 토론하고 설득하고 싸웠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라는 공간 안에서였다. 독립예술을 지원하고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2003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스태프로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 민간이 주도하는 대표적인 독립예술제다. 긴 시간 머문 것 같지만 매해 할 일이 생겼다.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못 했을 텐데 계속해서 하고 싶은 게 생겼고 그게 이 안에서 이루어졌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진행됐다.” ‘개인의 성장이 조직의 성장’이라는 말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사무실 전경이 좋았다. 월드컵경기장의 푸른 잔디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제18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앞둔 사무국이 분주했다. 풍성한 사자 머리 파마를 한 그가 등장했다. 홍대 앞을 상징하던 축제가 이번에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14년 만이다. 홍대 앞 상인들이 섭섭해했다. “막상 현장에선 시끄럽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건 그곳이 왜 관광지가 되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홍대 앞 이미지와 볼거리를 형성해준 게 예술가라는 걸 알고 있다. 하물며 프린지까지 떠난다니까 뒤늦은 후회를 하는 것 같다. 상실감일 수도 있고.”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오성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는 2003년 프린지에 스태프로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 
ⓒ시사IN 윤무영
오성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는 2003년 프린지에 스태프로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
2012년 즈음부터 고민해왔다. 홍대 앞이라고 불리는 문화적 거점의 주체가 예술가·상인·주민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그들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상인도 한곳에서 오래 장사하지 않았고 주민은 거의 빠져나갔다. ‘걷고 싶은 거리’에서 카피곡을 부르는 이는 많지만 고집스럽게 자기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줄었다. 관객은 일시적으로 홍대에 들를 뿐, 작업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울림 갖기를 원하는 사람은 적었다. 예술가들에게도 더 이상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곳이 아니었다.

이번 축제는 시작부터 생각이 많았다. 축제 형태의 행사를 계속 치러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예산도 많이 들고 노동집약적이다. 비슷한 플랫폼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도 강행한 이유는 이 축제가 여전히 중요한 기회인 예술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프린지’가 가진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예술의 본질과 내 삶의 본질을 질문하는 축제 그 자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유지하되 어디에서 어떤 대중을 만날 것인가 고심했다. 작가들에게도 이야기했지만 내 작품 하나 잘 보이는 걸 목적으로 하면 안 된다.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향하는지 얘기할 기회를 놓치면 의미가 없다.”

시도하는 것을 격려하는 문화가 ‘그곳’에 있었네

축제의 핵심은 경기장이라는 거대한 공간이다. 공공성을 띠고 있지만 폐쇄적인 곳이다. 예술가들도 이곳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10개 팀의 아티스트는 한 달간 경기장에 거주하며 작업을 한다. 반상회 참석이 필수라 얼굴을 익힐 수밖에 없다. 관객은 화장실에서 연극과 음악을 만나거나 관중석을 배경으로 한 실험연극을 관람할 수도 있다. 총 57개 팀, 약 1000명의 예술가가 참여한다. 홍대 앞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걱정일 만도 한데, 오 대표는 일단 기대가 된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공부 외에 방송반·합창반 활동을 해왔다. 합창곡을 선정하는 과정 역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하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리더 구실을 해왔다. 전공은 산업공학을 했지만 문화기획자를 직업으로 삼게 된 건 그 때문인 것 같다.

20대까지는 주장이 세서 많이 싸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존감은 낮았다. 서른 살에 ‘서울프린지네트워크’를 만나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수평적인 문화에서 토론하는 분위기를 접했다. 무언가 제안했을 때 아이디어가 덧입혀지는 과정을 경험했다. 비난하는 게 아니라 시도해보는 것에 대해 격려하는 문화이고 거기에 쾌감이 있었다. 그간의 시간이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오 대표는 말한다.

 

원문 기사 링크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