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팀] 흩어진 공간들, 오히려 짙어진 예술과 축제 by하녹
seoulfringe2023-07-10610
올해도 프린지는 프린지 답게 공간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다. 올해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더욱 확장하여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축제를 흩어진 민간 공간들로 옮겨가 축제를 열었다. 코로나 거리두기 방침으로 인해 공간 사용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는 환경 속에서 프린지만의 문제에 대한 독특한 대응방식이자 새로운 시도이다. 새 시도의 취지는 현시대에 대한 응답만은 아니다. 과거에 활발했던 길거리 독립 예술 공연의 장을 다시 한번 만들고자 하는 프린지만의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시도를 통해 소규모 창작팀들을 양성하는 프린지만의 특색을 다시금 강화하고, 또 새 공간 발굴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공연을 보러 가면서 눈에 띄었던 것은 공연장 주변의 거리였다. 공연장 자체뿐만 아니라 공연장이 위치한 신촌과 연희, 신수 곳곳을 탐방하는 재미가 있다. 현대화되지 않은 주택가와 상점들, 그리고 숨겨져 있는 골목골목 작은 카페들을 구경하는 것이 이 축제를 즐기는 또 하나의 묘미이다. 공간 자체의 감성이 공연을 보기 전과 후를 마치 공연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 있다. 공연장 역시 지금까지의 프린지처럼 극장 형태의 공간과는 사뭇 다른 공간들을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로 지하의 빈 공간들을 사용하지만 가정집을 활용한 몸소리말조아라 센터나 바람산 언덕 근처의 신촌문화발전소도 있다. 지금까지의 프린지와 다른 점은 민간 시설에서 축제를 여는 것을 메리트로 삼아 공연장을 나와 지역 자체를 무대로 활용한 공연들이 있다는 것이다. 호평이 자자했던 팔꿈치의 활동범위의 <밤이면 밤마다, 밤섬>이 바로 그 예시인데, 민간 시설에서 축제를 여는 것의 장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규모 행사가 어려운 시대의 상황을 극복하고 오히려 길거리나 소규모 형태의 독립 공연 감성에 초점을 맞춘 이번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과연 어땠을지 공연 하나하나를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올해 열린 공연들은 매해와 다름없이 각자만의 개성과 흥미로운 점들, 장점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공간을 적절하게 활용한 공연들이 있다. 신수동의 향수와 감성이 있는 이너프라운지 지하, 가정집만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몸소리말조아라 센터, 넓은 공간과 음향, 조명 시설이 장점인 연희예술극장, 야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함께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신촌파랑고래 등등. 각 위치의 공연장들은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각자만의 특색이 있다. 이러한 각 장소만의 특색을 잘 활용한 공연들을 중심으로 리뷰를 써보고자 한다.
- 이너프라운지(신수동), 팔꿈치의 활동범위 <밤이면 밤마다, 밤섬>
이번 프린지에서 공간을 가장 잘 활용한 팀이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팔꿈치의 활동범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밤이면 밤마다, 밤섬>은 이너프라운지 지하에서 시작해서 길거리로 나와 다 같이 라디오를 들으며 밤섬공원까지 걸어가 밤섬공원에서 헤어지는 공연이다. 이렇게 팔꿈치의 활동범위가 지역 민간 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이번 축제의 장점을 가장 이상적으로 활용한 전략인 듯하다. 물론 지역의 거리를 활용한 것만이 이 공연의 장점은 아니다. 공연의 시작, 전쟁 속 동물원으로 숨어든 두 소년과 소녀가 언어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바디랭귀지로 대화하는 장면은 전쟁과 기후위기로 인한 현재의 상황들을 똑똑하게 전달한다. 바디랭귀지는 점점 율동과 같은 무용으로 변하며, 정보전달이 위주였던 대화가 점점 미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 이후에도 스탠드업 코미디, 그림자 놀이, 팝업북을 이용한 인형극 등 오감을 자극하는 연출들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그 와중에도 낭만적인 분위기는 계속해서 쌓여가 사람들은 점점 여름 밤의 감성에 젖어들어 간다. 동물원의 아이들과 동물들이 같이 밤섬으로 탈출을 하기로 한 장면에서, 각 관객은 동물 또는 식물이 되어 배우들과 함께 길거리로 나선다. 실내 공연의 배경과 이어지는 시원한 여름밤의 공기와 조용한 길거리, 신기할 정도로 딱 들어맞게 길을 건너는 타이밍을 알려주는 오디오는 마치 동네 전체가 팔꿈치의 활동범위 팀의 무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사실은 공연의 일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밤섬탈출 작전’ 빠져든다. 10분쯤 걸었을 때, 공원입구에서 보이는 ‘밤섬 공원’이라는 표지판을 보는 순간 공연 제목과 연결되면서 다시 한번 현실과 공연의 경계가 무너진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공원의 벤치에 앉아 춤을 추며 밤섬으로 멀어지는 배우들을 보며 마무리되는 연극은 끝나고나서도 이 곳이 현실일까 아직 연극 속일까 헷갈리게 되어 긴 여운을 남긴다. 축제를 큰 맥락에서 바라보고 장소를 유리하게 사용하는 영리함과 무대를 연출하는 센스, 감성도 놓치지 않았던 공연.
- 몸소리말조아라 센터, 이목구비 <그녀들의 분위기>
이목구비의 <그녀들의 분위기> 역시 연극의 주제와 배경이 공간과 잘 조화되었던 공연이다. 연극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세 여자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카페라는 공간만큼 자신의 속얘기를 털어놓기 좋은 공간은 없다. 이 카페라는 공간의 편안함을 빌어 연극은 세 여자의 아주 현실적인 고민들과 동시에 아주 이상적이면서도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본 적 있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만약 무대와 객석이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서 공연을 했다면 ‘편안한 공간’이라는 것을 인식할 뿐 감정을 공유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텐데, 가정집에 옹기종기 모여 코앞에서 연극을 감상할 수 있는 몸소리말조아라 센터에서 공연을 함으로써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마치 카페 안에 같이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게 해준다. 카페의 옆자리에 앉아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 같은 기분으로 감상을 하고 나올 수 있다. 이 공연의 돋보이는 점은 장소 선택 그 자체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정집의 랜턴을 마치 조명처럼 활용하여 꿈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듯한 연출도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이다. 조명 활용 대신 방의 불을 껐다 켰다 하는 것만으로 몽환적인 분위기와 잠에서 확 깨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 민간시설을 창의적이면서도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생각이 드는 공연이다.
- 플레이스막1, 농긍창작소 <토끼는 어디를 향해 달리는가> & 미친 존재감 프로젝트 <우리는 미쳤다 외전: 승록 혼잣말 에디션>
플레이스막1은 작은 두 공간이 한 통로로 이어져 있는 형태의 극장이다. 크기는 몸소리말조아라 센터와 비슷하지만 벽과 바닥이 시멘트로 되어있어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서늘한 듯한 작은 공간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했던 공연들이 있다. 먼저 농긍창작소의 <토끼는 어디를 향해 달리는가>는 약 15분 동안 진행되는 무용 공연으로 랜턴과 벽에 붙인 포스트잇들, 조명 등의 다양한 오브제들을 활용하여 독특한 분위를 연출한 공연이다. 플레이스막1의 장점은 빔프로젝터와 선명한 조명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농긍착작소는 프로젝터를 이용해 홀로그램과 같은 배경을 만들고 이와 교류하는 무용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마치 이상한 나라로 빠져버리는 앨리스 같은 신비롭고 기묘한 느낌을 연출한다. 시멘트로 된 벽들도 이 분위기 형성에 기여한다. 특히 작은 관객과 무용수와의 가까운 거리감이 무용가의 움직임에 더 빠져들게 해서 다른 무용 공연들과는 다른 감회를 주기도 한다.
플레이스막1과 잘 어울렸던 또 다른 공연은 미친존재감 프로젝트의 <우리는 미쳤다 외전: 승록 혼잣말 에디션>이다. <우리는 미쳤다 외전>은 승록의 혼잣말로 진행되는 공연으로 격한 감정을 호소하거나, 그렇다고 또 이성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공연도 아니다. 승록이 세상을 마주하며 느꼈던 씁쓸하고도 공허했던 심경들이 느껴지는 공연이다. 이런 위트있는 듯하면서도 냉소적인 분위기로 쭉 흘러가는 공연은 플레이스막1의 아담하면서도 서늘한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린다. 특히 관객과의 소통이 주였던 이 공연에서 막1의 밀접한 거리감은 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앞 뒤, 옆이 구분되지 않은 벽들은 승록으로 하여금 앞뒤 구분 없이 이동하며 공연을 할 수 있게 해주는데, 1인극과 낭독극, 스탠드업 코미디를 자유롭게 오가는 경계가 불분명했던 공연의 형태와 맞닿아 있어 더 시너지를 발휘한다. 플레이스막1에서 했기 때문에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던 공연.
이 외에도 각 공간의 특색을 독창적으로 활용하여 공연을 만들어간 많은 팀들이 있었다. 민간 시설에서 축제를 진행한 것은 또 그 나름의 감성을 형성하여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냈다. 변화된 환경에 따라 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이 프린지와 함께 공간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번 축제. 항상 공간적인 실험을 하는 프린지이지만 ‘역시 프린지가 프린지했다’라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이전보다도 더 확장된 축제 공간의 범위가 앞으로 프린지의 공간 활용에 있어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도 궁금해지는, 새로운 과도기를 지나가고 있는 듯한 2022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