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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팀] 우리는 문화비축기지 시대의 프린지를 그리워해야 하는가? -당연할 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2 by루시

seoulfringe2023-07-10580

 프린지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축제는 당연해졌다. 모두가 자신의 색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지고, ‘함께’ 존재한다는 감각을 받았을 때 나는 프린지를 사랑했다. 축제는 영원해! 라는 단단한 믿음 속에서 8월의 끝자락이면 내년의 축제를 기약했다. 그렇게 네 번의 8월을 프린지로 가득 채우는 동안, 바이러스, 축제 공간, 발표하는 작품의 모양, 프로그램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2021년 프린지가 2013년에 떠났었던 홍대로 다시 돌아간 것이었다. 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라는 한 공간에서 복작복작 벌어지던 축제는 이제 흩어진 공간을 마주했다. 축제가 공간을 바꾼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2021년 3월 15일, 프린지는 ‘지난 2020년, 갑작스러운 코로나 시대에 어쩔 수 없이, 혹은 너무나 다급하게 ‘비대면’으로 관객을 만날 수밖에 없었던 시기를 지나왔다’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예술 축제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민간 공간으로 눈을 돌렸다 전했다. 소규모이고 덜 즐거울 수 있음을 사무국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제약조건이 많은 공공공간을 벗어나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민간 공간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해, 여러 사람의 우려와 기대 속에서 시작된 축제는 실제로 여러 변화와 무시할 수 없는 의문들을 남겼다. 그 과정에서 자꾸만 이전의 축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코로나19는 상황을 더 가혹하게 만들었고 당연한 축제라는 믿음도 같이 흔들리는 듯했다. 둘 중에 어떤 것이 원인이라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축제의 위기가 공간의 변화와 닿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단순히 코로나 이전 시기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2020년 축제 또한 코로나로 조심스러웠고, 많은 공연이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변경되었지만 그 당시를 추억했던 이유 또한 공간의 이유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함께 모여서 했던 그 시대의 축제를 그리워해야 하는가? 이 글은 특히 문화비축기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프린지와 함께한 4년 차 인디스트의 눈으로 그 대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축제의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세세하게 짚어보고 비교하며, 동시에 비슷한 공간들에서 진행한 올해 축제가 작년 축제와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확인한다. 왜 축제가 다시 공간을 바꿀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찾아보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정말 축제의 위기였는지 살펴본다. 무엇이 축제를 당연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우리는 다음 축제가 열릴 공간에 관해서 이야기해봐도 좋을 듯하다.


다시 홍대 : 달라진 공간, 달라진 축제



 홍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디 예술의 상징 같은 공간이었다. 대학로부터 문화비축기지까지 25년의 축제 동안 ‘프린지 전성기’를 홍대 시절로 꼽는데, 매해 약 15만 명의 사람들이 프린지를 관람했다. 공공공간에서 축제할 수 없었던 프린지가 다시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로 축제 사이트를 설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생각된다. 이곳에서 저마다의 역사를 가진 민간 극장과 전시장이 함께 프린지를 구성한다면 그것 또한 새로운 색채를 가질 수 있을 듯했다.

 실제로도 2021년과 2022년 기대되는 공간들이 꽤 눈에 띄었다. 특히 ‘몸소리말조아라’센터는 실제 아티스트가 거주하는 집이었고, ‘예술공간+의식주’ 역시 집을 개조한 전시 공간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올려왔던 ‘연희예술극장’과 독특한 방 구조의 ‘플레이스막3’, 그리고 신촌 한복판의 ‘신촌 파랑고래’ 야외 공간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했다. 2021년 방역 지침으로 인해 일부 공간이 공연장 미등록 공간이라는 이유로 공연이 취소되고, 전시 공간에서의 퍼포먼스가 금지되어 실제 시도를 엿볼 수는 없었지만 관객에게 다양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의미가 컸다.

 반면에 문화비축기지는 또 다른 방식의 새로움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과거 실제 사용했던 석유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문화비축기지는 그 공간 자체가 주는 울림이 컸다. T6의 원형 바깥 공간, T1의 유리 공간, T5의 원형 돔 공간과 T2의 옥상 공간까지 말 그대로 처음 보는 멋진 공간들이었다. 그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작품들, 그 공간이었기에 특별한 분위기를 줄 수 있는 축제였다. 그곳에서의 공연은 때론 압도적이었고, 때로는 ‘여기서도 공연한다고?’ 묻고 싶을 만큼 공원의 구석구석을 잘 활용한 작품들이 있었다.


 이러한 공간의 차이로 생긴 첫 번째 변화는 ‘공연 접근성’과 ‘공연간 접근성’이다. 공간을 옮기며 공연 자체의 접근성은 확 높아졌다. 공간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 대중교통 이동이 편리한 축에 속해 있거나 번화가 근처다. 특히, 유동 인구가 많은 신촌 파랑고래 앞에 프린지 현수막을 걸었던 2022년은 두근거림까지 전달했다. 야외 공연의 경우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공연을 관람하기 충분했다. 반면에 문화비축기지의 경우 월드컵경기장역과 버스 정류장에서도 공연이 있는 축제사이트까지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고 폐쇄적이었다. 상암에 사는 거주민이 아닌 이상 관객이 일부러 프린지를 위해 공간을 찾아와야 했고, 카페와 프린지 살롱 외에는 부대 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공연 간 접근성은 완전히 반대 양상을 띠었다. 프린지는 공간을 옮기며 티켓 정책을 완전히 새롭게 했다. 이전의 프린지는 ‘1일권’ 구매 형식이었다. 한 공연을 보기 위해 오거나, 지인 아티스트를 위해 온 관객도 자연스럽게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아티스트나 스텝, 인디스트 또한 마찬가지로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하루에 여러 개의 공연을 보는 것도 가능했다. 반면, 2021년 티켓은 ‘개별권’으로 공연의 가격을 아티스트가 직접 결정했다. 공간이 넓게 분리되며 하루에 여러 공연을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개별 공연의 접근성은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축제의 느낌을 주기는 어려웠다. 특히 프린지는 ‘연극제’나 ‘무용제’ 등으로 장르적 특성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러한 단점이 심하게 느껴졌다, 다양한 독립예술을 경험하고 싶었던 축제 구성원들에게도 아쉬움을 안겼다. 원하는 공연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며 관객 수는 오히려 늘어났지만, 그것이 개별 아티스트가 아닌 ‘프린지의 성취’가 되기 위해서는 공통의 감각이 더욱 필요했다.


 두 번째 변화는 공연 자체의 변화이다. 문화비축기지 시절 공연의 러닝타임은 길어야 40분과 50분. 1시간이 넘지 않았으며 15분, 20분 정도의 공연도 많았다. 예술가들이 시간과 티켓 가격 등의 부담 없이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정형화된 극장이 거의 없는 곳이거나 야외공간이다 보니 한 관객이 오래 앉아 집중하기는 어려웠던 공간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반대로 작년부터는 1시간, 길면 1시간 반 정도의 긴 러닝타임을 가진 공연들이 늘어났다. 오직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이동하고, 값을 지불한 관객들이기에 공연 시간이 짧거나 너무 작은 행사는 적합하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공연 장르 또한 많이 바뀌었다. 다원 예술과 짧은 연극, 음악 공연과 마임, 거리 예술과 무용 등 문화비축기지에선 조금 더 다양한 장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전시할만한 공간이 많지 않았고 일반적인 극장으로 쓸만한 공간이 적어 다 인원의 긴 연극은 공연을 올리기 어려웠다. 탱크 내부는 울림이 꽤 있어, 음악 공연 또한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2020년은 온라인 공연을 제외하고는 실내 공간을 모두 제외할 수밖에 없었기에 일반적인 극형식을 띈 공연은 올리기 어려웠다고 생각된다. 뚫려있는 공간을 어떻게 잘 사용하는지, 한 번도 공연해보지 못한 공간에서 어떻게 공연하는지 아티스트는 많이 고민했을 테고 그렇기에 ‘신기하다!’ 싶었던 공연들도 기억에 남는다.

 반면 극장 대관 비중이 높았던 2021년과 22년은 일반적인 극 형식의 공연, 전시가 많았다. 특히 2022년도는 2021년도에 비교해도 연극이 월등히 많았다. 단차가 있고, 의자가 있으며 조명이 보이는 이 공간은 이전보다 훨씬 쾌적해졌고 집중하기 좋아졌으나 형식상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팀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공연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2021년 전시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기획했던 여러 팀의 시도와 가정집이라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극, 퍼포먼스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툴지라도 해내야 했던 낯선 공간의 흥미로웠던 예술 실험의 19~20년도, 집중되는 공간에서 각 팀의 자랑을 뽐내거나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운 감각을 주려 했던 21~22년도. 그 각각의 장단점과 특징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세 번째 변화는 모임의 어려움이다. 공간이 모여있던 문화비축기지 시절을 구성원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행사들 때문이 아닐까. 문화비축기지 시절 프린지 살롱은 그날의 프린지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장이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오늘의 축제 이야기를 다 같이 하기도 하고, 인디스트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장소이기도 했다. 오늘의 미션을 수행하기도 하고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축제 공간이 흩어진 이후, 이런 행사는 어려워졌다. 공연 이야기를 나누기에 한 사람이 다수의 공연을 보기도 어려웠고 섹터도 네 군데였다. 또 2021년에는 혜화까지 범위를 넓혀갈 수밖에 없어 모이기는 더더욱 힘들었다. 2022년, 사무국이 ‘서울풀인지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기획했으나 축제가 열리지 않는 요일에 발걸음을 찾기에는 인디스트와 아티스트 모두 어려워 보였다. 특히 인디스트는 각 팀들의 교류가 어려웠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과거에 비해 더더욱 서로를 마주할 시간이 줄어들었던 인디스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돌아가기 바빴다. 축제 전반을 이해하기보다 축제 안의 사이트 그 자체와 그 사이트에서 하는 공연을 이해하는 것에 가까웠다.

 축제가 축제일 수 있는 요소들은 다양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함께’라는 감각이 준다. 특히 프린지는 한 주체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축제의 각 주체가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기를 꿈꾼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물리적인 거리는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인디스트들처럼 아티스트들도 제각기 공연을 준비하고, 공연하고선 돌아갔다. 프린지는 일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과 대관을 돕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축제는 개별 공연의 나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달라진 축제, 프린지의 공동체성은 위기일까?


 

이러한 세 변화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반응을 내뱉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전의 시도들이 그리웠다고 말할 수도 있고,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을 집중해서 보는 형식이 합리적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내 일만 하고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사람도 있고, 혹은 프린지가 어떤 부분에서 축제인지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 2022년 8월, 독립예술집담회 with 독립예술웹진 인디언 밥 에서는 축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라운 지점은 지난 2000년대 초반에도 축제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으며, 2013년의 축제 또한 지금의 형식과 다름없었다는 점이다. 축제가 이러한 공간 변화로 인해 공동체성을 잃었다기보다, 공간의 특성으로 얻은 또 다른 효과에 가깝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왜 우리는 축제 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거대한 주류 예술계가 배제했던 독립예술들. 그 권력에서 멀어진 작품들은 지원받을 수도 작품을 올릴 수도 없었다. 예술지원정책은 지금보다 미약했고 예술 권력은 상당했다. 함께였기 때문에 축제를 만들 수 있었고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프린지 예술가 선언문’에서 나오듯, 그 공동체는 ‘연대나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반대’한다. 프린지 페스티벌이 자유 참가 원칙을 계속해온 것도, 어떤 느슨한 공동체성을 계속해서 말하는 것도 이런 축제의 정신에서 나왔다. 그 속에서 예술의 시너지가 탄생했다. 서로 다른 작품 세계를 존중하면서 새 시도를 해보았고, 관객들에게는 전에 해본 적 없던 특별한 예술 경험을 선사했다.


 프린지의 단단한 지지 기반은 프린지 정신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정신은 여러 가지로 흔들리고 있다. 다양한 청년 예술인, 신진 예술인 지원 정책으로 이전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다양한 기관에서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프린지가 아니더라도 작품을 발표하고, 지원까지 받을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났다. 또, 소비자 정체성과 자본주의로 점철된 사회 분위기 속에 느슨한 공동체도 자신을 소진시키는 것이라는 감각은 커졌다. 굳이 개인의 시간을 쪼개서 다른 공연을 보러 갈 이유도, 대화와 네트워킹을 하고 갈 이유는 더더욱 없어졌다. 축제는 나에게 경력과 스펙을 줄 수 있는 플랫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감각, 더 이상 뭉치지 않아도 괜찮은 상황과 다른 작품에 대한 관심의 부재까지 섞이면서 ‘굳이’라는 생각만 커졌다.

 이에 더해 이전부터 이 지지 기반은 축제를 운영할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프린지가 월드컵경기장으로 장소를 옮긴 것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유였을 만큼 고정적인 축제 공간도, 단단한 지원도 없다. 25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축제는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대외적이고 물리적인 이유 없이 축제를 쉴 수조차 없었다. 축제 지원이 끊기기 때문이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소통의 문제는 계속 생겨났다. 축제의 사람들은 소진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프린지에는 지금 공동체성이 필요하다. 흔들리는 기반을 단단히 잡아줄 마음들.


 문화비축기지에서 축제를 하던 당시에도 이런 문제들은 산재하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성’이 많이 느껴졌던 이유는 물리적으로 붙어있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팀과 비대면 저 너머에 있는 공동체는 그 감각이 다르다.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 얼굴을 마주한 가까운 소통 속에서 가려져 있었고 우리는 이를 추억하기 시작했다. 문화비축기지에서 축제를 지속했더라도 이런 문제들은 수면 위로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축제는 문화비축기지 밖으로 나오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찾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내부의 예술 대신, 바깥으로 향하는 예술로 서로 마주하며 사람들에게 독립예술을 선보일 방법을 생각했다. 다양한 예술공간과 협업하고 많은 곳에 프린지를 알렸다. 그러나 축제 내부에서부터 흩어진 공동체성과 축제의 변화된 모습은 때문에 새로운 공동체를 찾기에 부족했다. 

 그러나 여전히 다행인 점은 공동체성을 논하기 어려운 여러 상황 속에서도 공동체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프린지만이 줄 수 있었던 따뜻한 환대,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정, 이곳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과의 다정한 네트워크는 여전히 사람들이 프린지를 사랑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떤 희망은 남아있을 것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2가 남긴 질문


 우리에게 지속되고 있는 사회현상을 바꿀 힘은 없다. 지난해, 프린지는 여러 위기를 마주했다. 그런데도 ‘당연한 축제’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이번 8월에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프린지와 프린지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사무국에서는 네트워킹을 고민했다. 서울풀인지페스티벌로 참가팀이 되어 신나는 파티와 소통의 장을 열어보기도 하고 독립예술집담회와 마이크로포럼으로 프린지와 공동체성, 예술과 환경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기도 했다.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축제 사무국의 이런 시도는 수도 없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또 다른 멋진 축제를 만들어냈다.


 프린지의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해냈다. 유독 눈에 띄는 건 ‘기후위기’에 대한 담론이었다. 낫아이의 <인류세> 와 보노보 프로젝트의 <우리가 남기는 흔적의 문양들> 등의 시도는 유의미한 가치가 있었다. ‘나’를 찾아가는 작업도 계속되었다. 이는 소수자와 인권에 대한 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고, 예술가 개인에게 또 다른 실험이자 유의미한 작업이 되기도 했다.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팀도 눈에 띄었다. 곧 해체될 팀입니다 의 <집집줍줍쥡쥡>말 조아리세요 터라는 집을  집을 퍼포먼스의 공간으로 새로 보이게끔 했다. 팔꿈치의 활동범위의 <밤이면 밤마다 밤섬>은 신수의 밤섬이라는 공간에 생태에 대한 이야기를 부여했다. 거리극으로 우리가 늘 보는 일상적 공간이 낯설어지는 경험을 커다란 따뜻함으로 전달했다.

 프린지에 자주 찾았던 아티스트들은 그 단단한 힘을 더했다. 매머드머메이드는 불가 버티고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라쿠고 공연을 선보였으며, 삼인칭시점은 팀 개개인이 첫 번째로 연출한 단편영화를 선보였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와 박혜랑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에너지를 전달했다. 박웅, 지구옆동네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프린지와 다시 만났다. 반대로 새로운 팀의 발견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빌트 아트랩의 <물들이다>와 미나나의 <여기서는 배우가 끝없이 달립니다> 등 프린지를 처음 찾는 새로운 팀들이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보았다.


 인디스트 활동 중에서도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고는 했다. 플리마켓으로 자신이 안 쓰는 물건들을 서로 물물교환하며 인사를 나누는 한편, 신촌 파랑고래 앞 부스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캠페인이벤트 팀은 인디스트를 위한 많은 이벤트를 기획했고, 프린지 방송국팀은 프린지 사이트를 뛰어다니며 현장을 담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3년 만에 돌아온 폐막 파티였다. 인디스트들의 별명이 쓰인 종이가 벽면에 붙어있었다. 롤링페이퍼로 마음을 전하는 인디스트들의 모습이 밝았다. 꽤 많은 인디스트가 남아 폐막을 즐겼다. 축제는 끝났지만, 이 만남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재미난 생각이 펼쳐졌다. 유독 한 팀이 되어 보였던 이번 인디스트들의 만남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흩어진 공간에서 진행된 두 해의 프린지는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었을까. 여전히 프린지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공동체는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새로 독립예술을 마주할 사람들에게 프린지는 여전히 큰 응원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강한 소속감을 가지고 상대를 배척하는 대신 자신의 이름으로 느슨하게 손을 잡고 있다. 프린지의 공동체성을 느끼는 데 있어, 모여있는 공간이 꼭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의 프린지는 그 함께함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고민을 시작한 첫 번째 해였다.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야할 일이 많다. 함께 만들어나가는 축제라는 가치 하나로 움직이는 프린지가 앞으로도 계속 어떤 플랫폼으로 적용된다면, 축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 가치에 동의하는 구성원들이 모여, 서로 축제와 독립예술에 대해 느슨하게라도 대화를 이어나가는 자리는 필요하다. 다양한 예술생태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게, 구성원 서로의 지지와 응원, 협업도 꼭 필요하다. 이처럼 어느 공간에서 축제가 진행되더라도 계속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리라는 것은 프린지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인 나의 다짐이기도 하고, 믿음이기도 하다.

 “나는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를 구성하는 ‘우리’ 중 하나입니다.”라는 예술가 선언문의 문구는 프린지를 구성하는 모두에게 해당된다. 프린지 폐막 영상에서 “내년에 만나요”라는 말이 얼마나 반가운지 다시금 생각했다. 지난해의 축제를 거쳐오면서 축제가 내년에도 계속될 수 있을까 싶은 우려가 들었던 건 단지 기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인디스트 동료들은 내년을 물어오고 내년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한다. 그 사랑스러운 믿음 속에서 다시 한번, 프린지는 ‘당연할 축제’구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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