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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트 기획_색리뷰] 정지 <장미> by. 잉북

seoulfringe2021-09-0312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내가 나를 마주하고 보듬을 때. - 잉북

 

혜나와 정희의 마주 봄, 그들의 어울림과 움직임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정희와 즐겁게 춤을 추다가도 정희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해맑음을 증오하다가도 순수히 행복에 젖어 있는 정희를 사랑하여 집착하는 혜나의 기복이 처음에는 당혹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희는 혜나가 만들어낸 또다른 혜나, 자신이다. 결국 혜나와 정희의 마주 봄은 혜나가 자신의 상처와 마주 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혜나와 정희는 상처를 마주 보게 되는 그 과정을 이 극의 큰 특징 중 하나인 움직임으로 표현해낸다. 격렬하거나 아름다운 춤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극이 진행됨에 따라 그것은 처절한 비명 같기도, 애절한 기도 같기도 하다.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던 혜나가 격렬하게 움직일 때 사뭇 과격한 춤사위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훨씬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혜나가 살기 위해ㅇ자신의 과거, 자신의 상처와 독대하고 고스란히 고통을 감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혜나는 용감하다. 혜나가 무력한 인물이었다면 극에서 정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혜나가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분명 상처를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정희는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저 따뜻한 장미꽃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는 혜나에게 정희는 계속해서 꽃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라고 말한다. 혜나가 부르짖을 때에도 팔목에 상처를 낼 때에도 추위에 몸을 떨 때에도. 그건 혜나가 상처입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암시와 같은 말.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따뜻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정희의 미소가 너무나도 따스했기 때문에, 혜나가 아마도 간절히 원했을 따스함이었기 때문에 관객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어쩌면 공연을 보는 사람들 중 다수도 혜나가 되었던 적이, 정희와 만났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나에게 괜찮다 말해 줄 사람이, 나의 과거를 설명하지 않아도 온전히 이해하고 나를 보듬어 줄 사람이 필요할 때 그 간절함이 만들어내는 또다른 내 자신과의 만남이 존재할 것이다. 결국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필요한 사람은 나 자신이다. 나의 정희가 나타나는 순간에, 혜나와 정희의 움직임을 떠올린다면 조금 더 용기를 가지고 나를 독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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