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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트 기획_공연일기] 극단 우아 <[리허설을 리허설하다]_develop-A_단칸방의 메데이아> by 이보다

seoulfringe2021-08-2819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코로나로 인해 공연예술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은 기약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예술계가 애초에 파이가 작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변방으로 몰려나고 나니까 그 파이의 규모를 새삼 체감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공연이 문화생활내지는 사치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이자 정체성이다. 공연에 올라서야 비로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들을, 무대 밖으로 쫓아내니 그 목소리는 도무지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극단 우아>의 공연에서 그동안 묻혀있던 목소리를 스피커도 없이 쩌렁쩌렁하게 들었다.

 

작품 메데이아2인극 같은 1인극이다. 이 문장을 보고 나는 오만가지 상상을 했다. 어떻게하면 2인극 같은 1인극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단순하게 12역을 하는 연극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부숴졌다. 극의 시작과 함께 암전이 찾아오고, 한 명의 배우가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어슬렁 어슬렁 들어섰다. 그가 들어선 공간은 다름 아닌, 관객이 없는 극이 올라가기 전의 공연장. 불을 켜고 배우는 연신 한숨을 내쉰다. 첫공을 겨우 올린 공연이, 밀접접촉자가 매표소에 왔었다는 이유로 공연이 취소되었다.

 

혹시 모르니까.’ 나는 그 문장이 이렇게 대책없이 폭력적일 수 있구나, 싶었다. 혹시 모르니까라는 불확실한 이유로 몇 개의 공연이나 취소를 당했을까. 코로나 음성판정을 받고, 밀접접촉자랑 직접 만난 것도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까, 공연을 할 수 없단다. 지하철도 운행을 하고, 시외버스, 고속버스, 기차도 잘만 달리고, 마스크를 벗고 음식점에서 여럿이서 식사를 하기도 하는데 공연만 혹시 모르니까할 수 없단다. 1년을 준비했는데, 몇 달을 준비했는데, 고작 며칠의 기간동안 열리는 무대인데.

 

그래서 두 명의 배우는 서로 거리두기를 한 채 1인극을 이어나간다. 정부지침에 따라서, 수치화된 제한을 받아들인 채 두 배우는 좁다란 행거만큼의 공간에 갇힌다. 심지어 한 배우는 관객석과 가까워 비말이 튈 수 있다는 이유로 옆을 보고 연기한다. 이아손이 메데이아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손이 맞닿을 수 없어, 반지를 던져서 주고받는 상황까지 연출된다. 현실과 극을 넘나드는 이 이야기는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양쪽을 모조리 꽉 부여잡은 채 탄탄하게 이어진다. 액자식 구성의 실험극은 그 어떤 형식화된 연극보다 깊은 몰입을 이끌어냈다.

 

7개의 행거, 몇 개의 천조각, 두 개의 상자. 무대 위에 올라간 오브제는 간소했다. 그리고 그것들로 충분했다. 극 중 모든 배역들을 표현하기에도, 극의 배경과 극장을 표현하기에도 충분했다. 처음에는 분명히 내가 관객으로 자리하고 있는데도, 배우들이 계속 관객 하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에 기묘함을 느꼈다. 하지만 메데이아의 공연도, 리허설(연습)도 모조리 끝나고 난 뒤, 극장이 다시 암전되었을 때 나는 내가 관객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배우가 무대를 떠나기 전, 극을 올릴 수 없는 극장을 한참이나 살펴본다. 그리고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볼 날을 고대하며 떠나버린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남았다. 불이 꺼진 극장, 관객도 배우도 더이상 찾아오지 않는 그 극장에 남았다. 나는 극장에 있는 오브제였다. 이 극의 일부로 활용이 되는 그런 오브제. 극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영영 그 자리에서 쓸모가 없어지길 기다리는 오브제 말이다. 이렇게 강렬하게 체화되는 메시지는 처음이었다. 씁쓸하고, 외롭고, 슬프고, 처량했다.

 

이토록 유쾌한 비극이 있을까. 이는 분명히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연극이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그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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