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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트 기획_색리뷰] 곡두환영 <잡히지 않는> by 루시, 죠니

seoulfringe2021-08-25183



강렬한 피의 이야기다. 핏줄로 연결된 자들과 그들과 연결된 자들의 핏빛 이야기다. “아버지 장례식에 썼던 음식이 어머니의 결혼식에쓰이고,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는 바로 셰익스피어의 고전 <햄릿>이 가장 강렬한 붉은 빛으로 나타난다. 공연장에는 붉은 공기가 만연하다.

곡두환영의 융합무용극 <잡히지 않는>은 그 누구보다 붉은 햄릿을 들려준다. 강렬한 움직임과 대사로, 영상과 오브제로 햄릿이라는 주인공이 겪는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숙부가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썼던 음식이 숙부와 어머니의 결혼식에 쓰이며, 복수를 부탁하는 아버지의 유령까지. 햄릿은 그 상처와 혼란으로부터 자신이 더 베이는 것을 막기 위해, 새로운 햄릿을 만든다. 그 자아는 햄릿과 함께 움직이기도, 따로 분열하기도,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왕의 목소리는 흰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 천장에서 움직이는 천은 평면의 책에서 튀어나온 왕의 유령 그 자체였다. 숙부가 아버지를 죽이는 비극을 목격한 햄릿은 고통스러워한다. 빠져나올 수 없는 흰 굴레에, 왕과 운명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아우성친다. 몸으로 밀치고, 소리를 질러도 나오지 못한다. 유령은 그를 가둔다.

그는 또 다른 자신을 만든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을 고민하는 모든 자아. 복수를 실행할 것인가 실행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아들. 장례식과 결혼식 사이 어머니 거트루드를 바라보는 자아들을. 그들은 같음과 다름을 반복하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엮어지기를 반복한다. 흰 천의 운명은 햄릿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가 입은 흰옷은 그가 입은 운명과 같다.

 

탁자는 관이 된다.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며 그들은 관에 들어가기도, 관을 빠져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그들은 천을 지나 왕의 죽음이라는 굴레에 갇힌다. 그것은 햄릿뿐만 아니라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도 마찬가지이다. 비밀스러운 왕비의 진실을 햄릿은 목격하길 원하면서도 두려워한다. 그가 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결혼식을 감행한 어머니의 선택과 욕망은 어디까지인가. 아들인 햄릿의 움직임에 그는 끌려가지만 끌려가지 않는다. 흰 드레스 안의 붉은 드레스처럼, 장례식 이후의 결혼식처럼, 아들과 남편을 살해한 왕 그 사이에서 그녀는 결국 붉은 천을 감은 움직임을 한다.

 

햄릿의 불꽃이 꺼지는 장면은 비극의 끝이자 운명의 끝이며 오히려 강렬하기보다는 아름답게 슬프고 씁쓸하다. 장렬한 죽음, 그 이전엔 예견된 죽음이다. 일렁이던 촛불은 움직임에 맞추어 흔들리다가 꺼진다. 세 명의 햄릿은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 각각이 서로를 죽인다. 모두가 죽고 비극은 끝이 난다. 피의 이야기는 하얀 운명들로 덮인다.

 

곡두환영의 <잡히지 않는>은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을 이야기한다. 반대로 잡히지 않고 휘발될 이야기들을 수많은 방식으로 거듭 이야기하며 잡히지 않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꼭 잡아둔다. 햄릿이라는 모두가 알던 그 이야기는, 그 어떤 방식으로 읽는 햄릿보다 강렬하다. 공연이 끝나고는 남는 이미지는 아주 진하다.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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