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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트 기획_인터뷰] <미드나잇 인-프린지> 박웅편 by.록시하트, 꾸질이

seoulfringe2021-08-1954

<미드나잇 인- 프린지>

박웅편

 

안녕하세요! 매 순간 관객에게 청혼하는 아티스트

박웅님과의 단독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제 인터뷰 역사상 가장 빛나는 필모그래피가 될 것 같네요!!

 

오늘은 2041815일이고,

 

저는 2041년에서 예술축제의 총감독을 맡고 있는 록시하트라고 입니다!

오늘 좋은 인터뷰가 돼서 언젠가 박웅 님과도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고 싶네요!!

 

Q1. 2041년까지 프린지페스티벌을 함께하시며, ‘프린지 꾸준의 전당에 입성하시게 되셨습니다! 어떻게 프린지에 꾸준히 참가하실 수 있었나요?

 

제가 2008년부터 프린지를 해서 21년일 때가 5번째였는데, 저한테 패턴이 있더라고요.

두 해를 연달아 참여하고 5년을 쉰 다음에 한 해를 하고 다시 5년을 쉰 다음에 3해를 연속으로 하는 패턴으로 해봤더니, 41년도엔 12번째 참가를 하며 프린지 꾸준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었네요.

 

Q2. 프린지에서의 공백기 5년간은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사람 삶도 그렇지만 예술을 하는 것도 굴곡이 심한 것 같아요.

첫 번째 5년에는 극단 내부적으로 문제점을 느껴서 어느 정도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에너지만 쌓아가기엔 우리도 힘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오기까지 5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재밌는 건,

14년도에서 19년까지의 5년이 걸린 건 14년에 프린지에서 했던 <치킨 게임> 공연이 굉장히 호평을 받아서 그 뒤로 스케줄이 쭉 잡혔어요. 저희 연극이 연극 꿈나무로서 메인스트림에 진출을 하게 되죠.

그때까지만 해도 프린지에 프로젝트 빅보이라고 두 팀을 선정해서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저희 연극이 선정이 돼서 두산아트센터에 갔다가 또 두산아트센터에서 저희 공연을 본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지방 공연을 요청하게 되면서 그 5년은 연극 꿈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는 상태가 되어 본의 아니게 프린지에 소홀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록시하트: 우와 프린지 작품을 통해서 5년간 정말 승승장구하셨네요!!

 

그러다가 제 개인적으로 좋은 기회를 잡아서 지원프로그램을 했었는데 2021년의 저한텐 큰 사이즈의 작품을 하는 바람에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그때 이후로 지원 사업들이 잘 안돼서

극단 자체는 쉬고 있었던 차였어요.

저희 극단은 사실 우정 단원이라고 해서 아트디렉터와 무대디자이너 두 분은 우정 단원으로 함께하고 정식 단원은 3명이 있는데,

한 친구는 결혼을 하고 2세도 태어날 상태라 장기 휴무 상태였고, 한 배우는 다른 극단에서도 작업을 꾸준히 해오느라 바빴어요. 저 같은 경우는 혼자서 글을 쓰면서 지원 공고를 내면서 지냈고요. 서로의 삶이 바쁜 채로 지내다가 19년도에 오래간만에 프린지를 방문하게 된 것 같아요. 19년에 복귀했을 때 문화 비축기지 자체도 인상 깊었고 되게 재밌었어요.

 

Q3. 박웅 님은 2041년에 자서전을 내실만큼 연극계의 메인스트림이 되셨습니다. 그 자서전 이름이 모였죠??

 

제가 자서전을 냈다면 <10년은 4번 도 반복될 수 있다>라는 제목의 책일 것 같아요.

 

예전에 부산 영화제 집행위원장분이 영화계에 남긴 어록 중에 모든 일이든 사람이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서 10년 동안 버티면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있다라는 말씀을 영화계 선배님들께 들어왔고, 실제로 살면서 그런 것들이 꽤나 통용되더라고요.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무언가를 10년간 꾸준히 하면 실제로 이루어지는 순간을 많이 목격했고, 경험해보기도 하면서 그 말의 신빙성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어요.

저의 자서전의 내용은 그 10년은 4번도 반복될 수 있는 것이에요.

 

실제로 제가 신춘문예를 처음 시작한 것이 2004년쯤인데 2044년까지 지치지 않고 낸다면 10년이 4번 반복되었을 테니까 그때쯤에는 꼭 되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해요.

20년 전의 저는 결심에도 못 올라서 이름 한 자 안 났지만, 2041년에는 심사위원의 심사평에 안타깝게 떨어졌다라는 평 정도는 받고 있는 것 같아요.

 

 

Q4. 자서전에서 2021년의 프린지페스티벌을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뽑으셨더라구요! 2021년엔 어떤 작품에 열정적이셨나요??

 

선비 아트팀 같은 경우는 작년부터 작업을 시작했어요. 선비 팀에서의 제 감각이나 느낌은 오래간만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같이 성장한다는 느낌이었어요. 실제로도 선비 아트팀 연출님은 연극 베이스로 예술을 시작하신 분이 아니라 영상과 미술 쪽 기반 작업을 하셨던 분이라 오히려 저와 작업을 하면서 그분한테는 연극적 베이스가 되고 저도 연극이 아닌 분과의 협업이라는 점에서 신선하기도 하고 매번 설레고 성장하는 느낌이었어요!

 

<운수 좋은 날 제비> 같은 경우엔 제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었어요.

나만 재밌으면 어떡하지? 코로나라 공연 환경도 좋지 않은데 예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과연 중요한가?...’ 이런 생각들에 확신을 주었어요.

프러포즈를 하려면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엇을 입을 건지, 어디에서 만날 것인지 등 많은 것을 신경 쓰게 되잖아요.

관객도 은혜 하는 만큼, 무대하는 사람이 신경을 많이 쓰는 만큼에 결과가 달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래 신청한 작품은 모노 뮤지컬이었지만, 프러포즈 극으로 바뀌게 되었죠.

관객분들이 공연 자체가 프러포즈였단 말이야?’ 하면서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점을 확인하며 저 또한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Q5. 자서전에서 프린지에 참여하는 박웅님만의 특별한 법칙이 있다고 하셨는데, 2041년에는 한번 밝혀주시겠어요?

 

제가 41년까지 총 12회째 프린지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저한테는 그런 거였던 것 같아요.

마치 경연제로 제가 표현하고픈 공연예술의 두 양상을, 하나씩 꺼내서 경연제를 펼치고 있는 느낌이요!

 

홀 수 해에는 드라마적인 극을 하며 스토리 자체가 연극의 형식적인 측면보다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관객분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욕망을 표출하고,

짝수 해에는 공연의 형식적이고 양식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관객과 공연의 관계성은 어떨까?’ 드라마적인 기승전결과는 조금은 떨어져 있더라도 연극 자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매력을 탐구해보는 느낌으로 진행해 왔던 것 같아요.

 

Q6. 박웅님은 코로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운수 좋은 날제비> <알고보면 좋은 사람>등을 하시면서 공백기 없는 활동을 이어오셨네요. 코로나 시대에도 꾸준한 활동을 하실 수 있었던 이유가 있으신가요?

 

문득 공연이 굉장히 프러포즈와 속성이 닮아있다고 깨달았어요.

되게 프러포즈도 전전긍긍하며 많은 준비를 하잖아요, 이 사람이 고백을 받아줬으면 좋겠고,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를 해도 어쨌든 결과는 상대방에게 달려있잖아요.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고백이 아니잖아요,

 

제가 예전에 어느 날 누군가에게 고백을 했다가 그날 차인 적이 있어요.

그 얘기를 들은 연극같이하던 친구가 형은 프러포즈와 차인 것을 하루에 다한 거야?’ 하면서 놀린 적이 있는데, 공연이 딱! 그렇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게 나는 관객을 연모하고 은혜 하는구나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서 최대한 프러포즈가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프러포즈 하고 커튼콜 때 관객들이 공간 내에서 보내주는 공기로서 확답까지도 예상할 뿐인 거죠. 이 프러포즈가 관객들에게 yes 인지 no 인지.

no인지조차도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공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절절한 프러포즈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과는 상관없이 힘이 난 것 같아요.

 

사실 아티스트로서 2021년의 코로나 때 내가 하는 예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과연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생각을 통해 제 나름의 해답을 찾은 게 내 마음에 이미 연모하는 마음을 품었는데 고백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거리 두기를 해야 된다고 해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맘을 품었으면 프러포즈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내 안의 있는 진심과 그 진심을 표현하기 위한 어떤 테크니컬 한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와 배려, 상대방에 대한 생각들이 뭉쳐져있다면 프러포즈 결과는 상관없이 해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 당시 제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고픈 거는 그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관객은 어떤 분이 오실 줄도 모르는데 꼭 공연을 하는 예술가로서의 나 자신을 이해해 줘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게 너무 나는 공연을 하는 사람인데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항상 이런 고민을 해이게 조금은 보편적이지 않다 란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극 자체가 제비가 프러포즈를 하는 건 그건 제비의 일이니까. 제비한테 중요한 건 프러포즈니까. 공연을 하는, 예술 하는 사람한테 중요한 건 공연이겠죠.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게 있을 텐데

삶 속에서 자기 뜻대로 안되는 일, 혹은 내가 바란다고 해서 상대방이 무조건 오케이 해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보편적인 주제의식에서 극을 확장시키는 과정까지의 저에게 너무 너그러운 건 진 모르겠지만 그 부분은 잘했다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Q7. 41년도까지도 프린지페스티벌에 와주셨는데요. 그 당시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매년 참여하시면서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나와있어요! 프린지페스티벌에서의 일화나 당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2008년도에 저희와 소극장을 쉐어하게 된 분이 있었어요.

당시 모노드라마를 하시는 분이셨고, 연출이자 배우 조명도 스스로 다시는, 모든 걸 다 하시는 분이었어요.

당시 저는 연극 씨앗일 때라 외부 극장에서의 셋업이라든지, 스텝들과 어떻게 협업을 하는지조차도 몰랐어요. 그래서 저희가 공동 셋업을 갔는데 저희는 조명을 어떻게 행잉 하는지도 모르고 조명 디자이너가 있어야 되나요? 하면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는데,

그분이 어차피 극장을 쉐어하니 조명디자인 자체를 맞추면 나도 편하고 그대들도 편하지 않을까요? 하시면서 극 내용을 알려주면 맞춰서 달아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때 그분을 지금까지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 문화비축기지에서 시파티 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데요,

아티스트 분들이 다들 맥주를 안 드시더라고요.

제가 어느 정도 짐작하는 건 아마 그날 연습이 있으신 팀들이었나 봐요. 반대로 저는 제가 연출이자 배우라, 제가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어서 혼자서 신나게 마셨죠.

그렇게 자리가 끝나갈 때쯤 저도 정리를 도와드려야 되는 게 아닐까 싶어 여쭤봤는데

프린지 관계자분 중에 얼굴 보면 아는 여자 스탭분이 정말 환히 웃으면서 박웅 님은 지금 안전히 집에 돌아가 주시는 게 저희를 도와주는 거예요라고 하셔서 객관적으론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모를 씁쓸함을 안고 돌아서서 우리 동네에서 술을 더 마셨죠. 무언가 억한 심정도 들었던 것 같아요.

 

박웅: 작년에도 계셨어요. 티켓부스에

 

록시하트: 여자 스탭분 머리가 길었나요? 짧았나요?

 

박웅: 길었어요. 안경 안 쓰고.

그때 전 왜 그랬을까요? 왜 약간 삐진 마음이었을까요??ㅋㅋㅋㅋㅋ

 

록시하트: 자리가 다 끝나고 돌아가시는 길이였죠? 더 드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죠??

 

박웅: 그렇죠. 전 순순히 돕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고주망태가 되어 도와드리면서 술을 더 먹고 싶다는 건 아니었어요. 혹시 그런 오해를 하셨나??? ㅋㅋㅋㅋㅋㅋㅋㅋ

 

록시하트: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꼭 오해를 푸셨으면 좋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웅: 제가 그날 동네에서 술 한잔 더했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엠케이님 얘기도 할게요! 2020년도에 태풍 왔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처럼....

원래 전날까지만 해도 되게 뽀송뽀송 했는데, 바지 걷고, 커다란 삽 들고 다니면서 어디 물 쓸었다가 걸레로 닦다가 완전 방송에서만 보던 자연인을 프린지에서 만났던 게 기억에 남아요. 얼굴도 까맣게 타가지고 더 기억에 남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

 

Q8. 1인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지난 시간 동안 어떻게 3의 시선을 길러오실 수 있었나요?

 

약간의 트레이닝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 같은 경우는 연기로 시작을 했다가 2014년 치킨게임 때 연출을 하던 친구가 결혼을 하는 바람에 장기 휴직 이 되었어요.

그렇게 연출이 빠지니까 그럼 연출을 누군가 해야 되는데 그나마 글을 쓰는 사람이 좀 더 낫지 않겠느냐?라는 극단 자체적인 의견에 의해 제가 연출을 맡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연기를 할 때에도 3의 눈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내가 객석에서 어떻게 보이는가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스스로 트레이닝한 효과도 봤던 것 같아요.

 

사실 개인 작업을 하면서 다른 오퍼레이터, 스탭분들과 극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극 초반에 구조를 갖출 때에는 굉장히 스스로를 다중이로 만들 때가 있어요.

연출로서 할 때 배우일 때 작가일 때가 있는데 심지어 하루에도

아침 오전은 작가로서 순전히 글 자체를 다듬는, 작가 마인드로 쓰고

연습실에 가서는 연출로서 동선을 긋고 감정 몰입을 연습하다가

저녁 연습 때는 다시 그 인물이 되어서 배우 마인드로 진행을 하며, 하루를 쪼개 썼던 기억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식의 훈련이 현재 2041년의 저에겐 큰 도움은 안 되었다고 얘기해 주고 싶기는 한데, 그렇게 열심히 산 제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제가 재밌게 산 것 같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거 관련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 있어요!!!!

2년 전에 1인 창작자들끼리 모인 포럼 때 제가 ‘1인 창작자이다 보니 누군가 봐주는 사람이 없어 객관적인 시선 확보가 힘들 때가 있다, 우리 프린지 동료들끼리라도 서로 봐주고 의견을 내주면 좋을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꼭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제안했던 점이 2021년에 3의 시선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저는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Q9. 마지막으로 인생의 하이라이트기도 했고, 가장 힘겨운 시기이기도 했던 2021년의 박웅님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2021년 저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어요.

나는 당연히 너보다 더 많이 알 수밖에 없잖니? 너 때를 기억해서 아는데 너도 그간 경험한 게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미리 예상하고 지뢰 힘들겠구나 계산하는 게 있어. 오히려 겁먹고 시도도 못하는 것들이 그 당시에 있었던걸 너무 잘 이해해. 그런데 어찌 보면 20년 전에 그 문제로 고민을 했기 때문에 견뎌야겠구나란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너로 인해 젊어진 것 같구나.

 

20년 전 제가 그랬거든요. 차라리 몰 몰랐을 때는 무언가를 해요.

그러곤 힘들어하죠. 잘 모르니까. 그런데 어느 정도 하고 나니까 일이 쉬워야 되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쉽지가 않은 게 미리 힘이 빠지더라고요. 이젠 미리 내가 힘들 걸 알거든요.

약간 군대 다시 간 느낌이에요... 하기 싫은 무언가를 다시 하는 느낌이요.

그래서 뭘 몰랐을 때 열정적이었던 저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네요! 그럼 박웅 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내일 있으실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의 무대를 기대하며 이상 단독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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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쓰는 2041년 필모그래피>

 

2041.07.07.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초청공연

2040.07.28 지산 락페스티벌 부활, 초청공연 행사개최지 달' 에서 진행

2036.01.02 <10년은 4번도 반복될  수 있다> 자서전출간

2035.11.12 '그 시절 중국인이 사랑한 배우' 1위 선정 

2034.03.19 중국시장 진출

2022.02.24 웹소설 작가 데뷔

2021.07.20 <운수좋은 날제비> 첫 시연 

2021.08.15. 선비아트 <알고보면 좋은 사람> 첫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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