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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트 기획_인터뷰]<미드나잇 인- 프린지> 박혜랑편 by 록시하트, 꾸질

seoulfringe2021-08-1496

<미드나잇 인- 프린지>

박혜랑편

 

안녕하세요! 국내 최초, 1스토리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아가는

박혜랑님과의 단독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제 인터뷰 역사상 가장 빛나는 필모그래피가 될 것 같네요!

 

오늘은 2041813일이고.

저는 2041년에서 예술축제의 총감독을 맡고 있는 록시하트 라고 입니다!

오늘 좋은 인터뷰가 돼서 언젠가 박혜랑님과도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고 싶네요!!

 

 

Q1. 인터뷰에 앞서서 도슨트를 통해 예술의 진입장벽을 낮춰, 국내뿐 아니라 해외까지 많은 이들에게 예술을 알리신 소감 한 말씀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예술가이자 매개자의 삶을 꿈꿨어요. 제가 예술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걸 너도 같이 해보자’ ‘재밌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그러한 예술에 일조를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도 너무 좋고, 이런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에 매번 감사히 할 수 있었습니다.

 

 

Q2. 제가 오기 전에 박혜랑의 자서전을 탈탈 털어 읽고 왔답니다! 그런데 그 책 이름이 잠깐 기억이 안 나는데 뭐였죠???

제 자서전은 <걷고 또 걷다 보면> 입니다!

 

 

Q3. 맞아요. 그거였죠!! 제목에 의미가 있었던 것 같은데 뭐였죠??

 

저는 인생에 어떤 큰 목표가 있었던 사람은 아니에요.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하다 보면 사람들이 찾아줄 거란 생각을 해왔던 사람이어서 계속 걸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래서 <걷고 또 걷다 보면>이 제 자서전 제목으로 가장 진실하다고 생각했어요.

 

 

Q4. 자서전에서의 기록 중에서 2021년의 프린지페스티벌을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뽑으셨더라고요! 2021년엔 어떤 작품에 열정적이셨나요??

 

21년도엔 <사라지다>라는 2421년에서 바라보는 박혜랑 회고전을 만들었었죠.

이 작품을 만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첫 번째로 제 인생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 작품을 스스로 도슨트를 해보았어요.

왜냐하면 도슨트는 원래 다른 사람의 일대기를 해설하는 직업인데, 제가 그동안 도슨트를 하며 예의를 지키지 못한 부분은 없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 보면 좋은 지점에 닿지 않을까 란 생각에 도전을 했었어요.

두 번째로 21년은 모든 전시회에 도슨트가 금지가 된 시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도슨트를 만들어보자 란 생각도 있었고,

세 번째론, 저의 계속되는 배우 생활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연기 테크닉을 계속 연마하고 싶어 퍼포먼스를 결합하려는 시도를 했었어요. 물론 취소가 되어서 아쉬웠지만요.

 

이렇게 여러 측면에서 작품을 구상하며 제 인생을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 작품이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Q5. 사실 <사라지다> 회고전은 10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매번 더 발전한 박혜랑님의작품들로 채워나가는 특별한 전시잖아요. 그 특별한 전시회를 400년 이후로도 할 수 있겠다고 예상하신 이유는 2021년의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의 첫 시연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당시 반응이 어땠나요???

 

사실 이 작품은 그림을 보여주는 게 우선이 아닌 연기를 보여주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전시장으로 꾸며놓은 공연장을 생각하며 구상을 해와서 별로 기대를 안 했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거예요!

긍정적인 반응들이 매 회차마다 이어지다 보니까 앞으로 좀 더 시간예술 쪽 창작을 더 해도 좋겠다란 생각도 들었고, 어쩌면 이런 무대가 나만의 시그니처가 될 수도 있겠다란 생각도 들면서 용기를 얻었던 것 같아요.

 

 

 

Q6. 21년도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첫 시연을 하신 회고전이 2041년 올해 8월에 또 한 번 관객들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지난번 전시회 때는 전국 매진이 돼서 볼 수가 없었잖아요그래서 올해 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으신데, 이번엔 어느 전시관에서 어떤 이야기가 추가돼서 진행될 예정일까요??

 

올해는 예술의전당에서 초청을 받아서 예술의 전당 3, 4관 에서 대규모로 진행이 될 거예요. 사실 제가 이번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으면서 작품이 더욱 추가가 되었고, 해외에서도 사랑을 받으면서 회고전이지만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영광전을 진행 중입니다!

 

 

Q7. 독립예술가로서 오랜 시간을 보내오셨는데 자서전에 그 당시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매년 참여하며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나와있어요! 프린지페스티벌에서의 일화나 당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은... 2020년에 문화비축기지에서 큰 모기에 쏘인 거만 기억이 나서....ㅋㅋㅋㅋㅋㅋㅋㅋ

엉덩이가 너무 아픈 거예요!! 처음엔 뱀이나 쥐한테 물린 줄 알았어요!

간지러운 게 아니고 너무 아파서 파상풍 주사나 광견병 주사 맞아야 되나 싶었어요!!!

 

록시하트: 그날 인디스트분들이 운영기지에 엄청 왔었어요! 버물리 달라고!!ㅋㅋㅋㅋ

저도 다리가 띵띵 부었던 기억이 나요!!ㅋㅋㅋㅋㅋㅋㅋ

 

박혜랑: 그때 여름이라 덥지, 비 오지, 모기 쏘이지.... 진짜 재난이 따로 없었어요.

그게 너무 강렬했어서 사실 다른 기억은 잘 안 나요...

 

근데 이런 내용을 인터뷰에 쓸 수는 없잖아요!!

 

(20년도 인디스트분들, 관객분들의 추억 소환을 위해 공유해봅니다!! 모두 웃고 가세요!!)

 

진지하게 답변을 드리자면,

2029년쯤에 했던 작품이었는데요. 그때 제가 굉장히 독특한 걸 했어요.

제 스스로 마스터피스라고 불리는 작을 완성했는데, 그때 좋은 반응을 얻어서 국립극단에서 제안이 온 거예요

전 이제까지 실패한 배우란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 계기를 통해 좀 더 공연 예술을 해도 되는구나’ ‘내 기획이 인정받는구나란 느낌을 받아서 굉장히 뜻깊었던 일화로 기억이 남습니다.

 

 

Q8. 그럼 만약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2041년 현재에 참가를 요청하면 응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네 당연하죠! 저는 8월은 항상 프린지를 위해서 일정을 비워놓거든요.

그리고 전해 작품이 끝나고 집에 가면서 다음 해 작품 구상을 끝냅니다! 언제든 올리기만 하면 되고, 사실 준비하는 기간은 짧지만 제 작품은 1년 동안 묵혀 놨던 저의 관심사를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그래서 매해 저를 보시면 이 사람이 어떤 것에 꽂혀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2041년에도 저는 제가 꽂혀있는 것을 작품으로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Q9. 그럼 다음 질문으로, 2021년은 아티스트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으신데요, 이때가 코로나 팬데믹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비롯한 <잔니로다리 특별전 도슨트> < 로즈와일리전 도슨트> <명화쇼핑전> <동물의 사육제> 까지 하시면서 공백기 없는 활동을 이어오셨네요. 코로나 시대 때는 어떻게 활동을 해오셨나요?

 

 

코로나 팬데믹 시기의 저는 백조가 수면에 떠있기 위해 발버둥을 치듯, 성장하기 위해서 이전보다 두 배, 세배 더 열심히 움직였던 것 같아요.

제가 쉽게 많은 일을 이뤄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모든 게 물밑에서 애썼던 결과물들이거든요. 21년이 위기였다는 아티스트 분들이 많았지만 저는 저를 성숙시킬 수 있었던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야지만 사람들이 이 시기가 끝났을 때 날 써준다고 생각해서 더 두 배, 세배 움직였었어요. 업그레이드되어 있어야만 가치를 알아봐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요. 코로나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자기 발전의 시간으로 삼으려고 애썼어요.

 

저는 공부를 좋아하는데요. 공부라는 건 삶의 해상도를 높여주는 일이라고 들었어요.

모호하게 보였던 걸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죠. 공부를 하면서 점차 선명해져 가는 예술 작품들을 보는 그런 과정을 즐겼던 것 같아요.

그때 거의 한 달에 작업이 4, 5개씩 몰려서 잠을 설쳐가며 살았는데도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또 일을 주셨을 때의 감사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더 힘이 되었던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Q10. 사실 도슨트란 직업이 박혜랑님의 <사라지다> 전을 기점으로 23년대부터 대중성을 갖춰가면서 점점 도슨트를 희망하시는 분들이 많아지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단연 1등 공신으로서 도슨트란 직업의 탑을 지켜오셨는데, 20년 전을 되돌아봤을 때, 박혜랑님만의 도슨트는 어떤 차별점이 있었던 것 같나요??

 

 

저는 매개자이지만 절대로 예술인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현장에 있는 사람이 도슨트를 하는 것에 아마 메리트를 느끼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경계가 없었어요. 박물관, 문학, 연극, 음악 다 해설하면서 경계 없는 작업을 하며 약간 어떤 장르를 해도 들을만하다’ ‘재미있다란 말을 듣기 위해 노력했어요.

제 장기인 연기를 넣으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했던 것,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는 것, 들어오는 일을 가리지 않은 것, 3가지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Q11. 자서전을 보다 보니 박혜랑님은 연기를 하시던 배우님으로 오랜 시간 지내오셨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또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가 가장 큰 인생의 행복을 느낀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스토리아티스트로서의 인연도 닿을 수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동화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했고, 24살 때 참가한 전국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을 탔어요.

그래서 스토리아티스트로서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고, 제 자체가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그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는 단어나 목소리, 억양을 연구하는 걸 재미있어했어요. 그래서 제가 잘하는 걸 쭉 연관을 시키다 보니까 스토리텔러로서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 글과 그림, 작곡 등을 하면서 창작으로 풀어냈던 게 스토리텔러로서의 인연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Q12. 배우로서 원하던 삶에 도달하지 못하셨던 시기가 있으셨는데요, 이 당시 슬럼프를 어떻게 버티며 오늘날까지 예술을 이어오실 수 있으셨나요?

 

제가 잘 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했어요.

비록 배우로서 어떤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분명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 가 존재하고, 찾아나아가는 여정이 길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이야기를 만들고 나를 배우로 쓰고 나를 어떻게든 부려먹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계속 창작을 해오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어떤 지지 않을 거야란 마음이 있었고, 내가 쓰임을 받는 배우가 아닐지언정 나는 쓸모가 있다는 걸 믿고, 네가 안 쓰면 내가 쓴다!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Q13. 마지막으로 인생의 하이라이트기도 했고, 가장 의미 있는 시기를 보냈었던 2021년의 박혜랑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쭉 앞을 보고 갔으면 좋겠고,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네요! 그럼 잠시나마 박혜랑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내일 있으실 전시도 파이팅 하시길 바라면서 이상 단독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본인이 쓰는 필모그래피

 

2041.08.14. <일확천금> 박혜랑의 회고록전

2039.12.09 대한민국 올해의 음원 대상 <신스팝> 에쉬드 재즈 대상

2037.02.15 한예종 융복합예술컨텐츠기획원 교수 임용

2036.06.01. <걷고 또 걷다 보면자서전 출간

2035.09.16 예술의 전당 개인전 개최

2034.04.0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수상

2030.10.11. 국립극단 1인극 참여

2028.02.22 <쓸모 없는 물건나라> 백만 부 판매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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