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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프로그램리뷰] 예술가에게 검열은 어떻게 일상이 되는가 by.루시

seoulfringe2020-08-3132


검열

1, 어떤 행위나 사업 따위를 살펴 조사하는 일
3. 언론, 출판, 보도, 연극, 영화, 우편물 따위의 내용을 사전에 심사하여 그 발표를 통제하는 일. 

 검열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자. 명사로서 검열이 가지는 뜻 중에 위의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조사하는 일과 통제하는 일. 문화예술계에 대한 심각한 통제가 이루어졌던 70, 80년대에 비해 검열이라는 단어는 통제하는 일에서 조사하는 일로 의미가 나아가지 않았겠느냐고 사람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 아래 놓여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열이라는 단어는 이 두 가지 뜻 사이에서, 또 사회와 개인 사이에서 표류하며 수많은 표현, 그리고 억압에 대한 저항을 막고 있다.
 “예술가에게 검열은 어떻게 일상이 되는가?”라는 이번 마이크로포럼은 우리에게, 또 예술가에게 검열이 무엇이고, 어떻게 일상이 되었으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는 국가의 검열에서부터 시작하여 학교에서 예술대학생으로 행할 수밖에 없었던 자기검열,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상황과 자본주의와 힘의 논리 속에 벌어지는 검열들, 단순한 조사라고 생각한 사회와 개인의 검열이 어떻게 통제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기획자, 예술인, 예술대학생,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많은 생각을 이번 포럼에서 나누고 고민해보았다. 


일상 속의 검열 :

 포럼에서는 수많은 사례가 오갔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당사자였다. 예산이 삭감되고 다원 예술이라는 분야 자체가 흔들리는 큰 사건이었다. 예술대학교에서는 학교나 지역사회의 입장에 따라 예산이 삭감되거나 공연이 강행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표현이 억압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조금 더 개인적으로 나아가서 교수가 원하는 작업물을 만들거나,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수업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 듣지 못하는 그 상황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지 못하게 억압해온 것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검열은 왜 발생하고 일상 속에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공통으로 이야기가 나온 것은 힘과 자본의 논리이다. 예산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예술사업의 경우에는 “이것이 어떤 경제적 기대효과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명확히 선행되어야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예산이 정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비대칭적인 권력이 생성되었다고 말한다. 기관의 필요에 맞춘 작업이 선정된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특히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선정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작품들을 선정하지 않음으로서 생기는 검열이 있을 것이고, 이러한 효과를 맞추기 위해 예술인 스스로 통제하는 요소들이 존재할 것이다. 예술대학생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예술을 평가받고 그것이 수치화되며 조금 더 교수, 또는 학교의 필요에 맞춰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은 바로 교수와 학생, 학교와 학생이라는 견고한 힘의 차이와 권위에서 발생한다.


 검열에 맞서지 못하는/않는 이유: 

 이번 포럼을 준비한 예술대학생네트워크_(가칭)블랙위원회는 블랙리스트 사건을 대학 내에서 직접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지, 또 왜 나서지 않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 중, 많은 예술대학생이 문화예술계에 속해있음에도 당사자성이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내렸다고 한다. 예술대학생뿐만 아니라 예술대학 밖의 타 단체와의 연대가 어려운 이유도 그들에게 없는 당사자성에 있다. 당사자성과 함께 여러 이유가 제시되었다. 힘에 눌려 불만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 개인의 문제가 중요해졌다는 생각, 또 사회 변혁의 욕구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어떤 사건의 당사자로서 낼 수 있는 목소리는 한정적이고 일시적이다. 어떤 문제들은 연대가 필요하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프린지가 2019년, 20년이 되어서 이야기하고 또 블랙위원회가 블랙리스트를 공부하고 예술대학생을 모았던 것도 그 이유에 있다. 정말 한 사건을 겪은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당사자성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 것, 과거의 이 문제가 지금 어떤 사건들로 기능하고 있는지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연대이고, 그 연대를 위해 우리는 모두 당사자성을 가져야만 한다. 비단 예술계의 문제가 아닌 예술을 포함한 전체 사회의 문제임을, 우리의 일임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 

 검열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사회시스템은 교묘하고,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견고하다. 이번 포럼에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효율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제적인 것을 효율적인 것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비효율성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비효율성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효율적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시스템이 만들어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은 추후에 있을 더 큰 문제들과 붕괴를 막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변화를 꿈꾸고 검열과 억압에 저항해 나가는 것은, 너와 과거의 문제가 아닌 나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제라고 느끼고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이미 견고하게 작동하는 수많은 문제 속에서 더 큰 문제가 예측되는 가운데에선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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