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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프로그램리뷰] 여자아이는 여자아이답게 by.루시

seoulfringe2020-08-31105

Q. 다음 단어들을 두 가지로 분류하시오.
    원피스 / 바지 / 짧은 머리/긴 머리/구두/운동화/분홍색/파란색/ 

 위의 문제를 풀어보자.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면서도 위의 단어들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단어를 각각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로 분류하라 더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아마 많은 사람의 답은 동일하게 내려질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러한 ‘여자아이다움’ ‘남자아이다움’을 깨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저기 저 아이는 바지를 입었으니 남자아이일 거야’, ‘이 아이는 분홍색을 좋아하니 여자아이일 거야’, 라고 자동적으로 판단한다. 여전히 성별에 대한 분류와 편견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특히 아이의 성별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와 지금,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하다.
 
 이번 마이크로포럼의 발제자인 아티스트 이한솔은 두 살 아기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면서, 또 여자아이들의 옷을 보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여자 아기의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질문을 받으면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예쁘지만 불편한 아기 원피스에 자꾸 눈길이 가는 자신을 보며 호불호를 말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어떤 옷을 입히고 머리카락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또 무엇이 우리를 ‘여자’아이로 길렀고, 우리가 지금 ‘여자’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이번 마이크로포럼에서는 ‘여자아이답다’라는 것, 더 나아가 ‘~다움’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고민, 생각과 비판을 나누었다. 

 #여자아이다움 #남자아이다움 #교육

 우리는 아기에서 아이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여자아기에서 여자아이로, 남자아기에서 남자아이로 자란다. 태어나자마자 감싸지는 이불의 색이 다르고, 선물 받은 모빌의 모양이 다르다. 조금 더 커서 미디어를 접하게 되면 이 차이는 더 확고해진다. 자동차에는 성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에선 용감한 남자 경찰차와 상냥한 여자 구급차가 나온다. 대개는 남자 경찰차가 주인공으로 나선다. <뽀롱뽀롱 뽀로로>의 초기 주인공 중에서 여자 캐릭터는 분홍색 수달이고, 요리를 좋아한다. 여자아이들은 구두를 신고, 원피스를 입는다. 그게 친숙하고, 익숙하다. 성인 여성의 옷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남자아이들은 자동차로 손을 뻗고, 여자아이들은 인형으로 손을 뻗는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놓인 환경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그 ‘정해진’ 장난감과 옷차림으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되었고, 비교적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도 점차 함께 놀며 저마다의 규칙 내지는 ‘그래야 한다.’ ‘그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성별의 차이는 매우 작은 것임에도 불구, 우리는 아이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여자’ 혹은 ‘남자’아이가 된다. 이것은 부모의 양육 문제이기보다 이런 ‘~다움’이 조금 더 무의식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 특히 나이가 어리고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좋아하는 것으로 학습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자라 의사 표현을 하게 되고, 초등학생이 되면서 교육은 이러한 선입견을 깨고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도록 도와야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여전히 많은 학습 동영상에서 자연스럽게 성별을 나누고 있고, 이는 학생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된다. 이는 오히려 ‘너는 이걸 좋아해야 해’라는 어떤 말들 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며 무의식적으로 체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자아이다움’ ‘남자아이다움’은 더 나아가 ‘여자다움’, ‘남자다움’으로 귀결된다. 여자다움으로 귀결된 상냥함과 웃음, 꾸밈은 하지 않으면 잘못되었다,라고 표현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성차별 요소와 자본주의의 요소가 엮이며 사회는 때로 어떠한 특성을 여성과 남성의 것으로 규정짓고, 또 이를 지키게끔 만든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떠한 ‘~다움’은 사회에서 자신에게 강요된다. 경제적인 이유로 이것들이 당연해지는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이에 저항하기 쉽지 않다. 

#다움에저항하기

 여자아이다움이 여자다움까지 이어지는, 끊임없는 억압과 차별의 순환을 끊는 방법으로 다양한 것들이 제시되었다. 첫 번째로 우리는 ‘~다움’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다움, 남자다움, 어린아이다운, 어른다운, 프린지다운, 축제다운, 그 모든 기준과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러한 특성들로 한 사람을 규정짓지 말아야 할 것을 우리는 이야기한다. 다움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다 의심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나다움’이라는 것도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와 특성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답다’라는 한 단어로는 결코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해의 방법이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아이 스스로 이해하게끔, 또 어떤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게끔 많은 목소리와 입장을 들려주는 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구성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성 차별적인 요소들에 대한 저항이다. 새로운 세대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계속 어떤 ‘~다움’들에 대해 불편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화를 내거나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만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통의 아이들에게 “남자와 남자도, 여자와 여자도 사랑할 수 있어!”라고 외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면, 또 짧은 머리를 한 여자아이에게 “남자아이에요?”라고 묻지 않는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세대가 거듭할수록 점점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나누었다. 


“여자아이다움”이라는 것은 어쩌면 젠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이다. 지속되고 또다시 재생산되었던 그 성격은 결국 우리가 다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미디어와 크고 작은 사회에서 왔다. 우리는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아이들이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 더욱더 사회가 그어왔던 선을 지우는 작업을 때로는 이해로, 때로는 저항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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