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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린지씨] 모나지 않은 - 모나지

seoulfringe2023-08-18593

일시 : 8월 14일 17시

진행: 오프라인 홍보팀 라니, 예술가지원팀 제티

 

안녕하세요, 저는 전시 <모나지 않은>의 예술가 모나지 입니다.


저기 왼쪽에 있는 작품들 중에 절단된 모습의 사람이 있는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업을 하신 걸까요?

나라는 존재가 남들에게 재단되고 평가에 의해 잘려지는 걸 느끼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명확하게 존재할 수 없었다가, 나의 그 절단된 느낌을 오히려 좋게 받아들여서 다른 물고기나 이런 식으로 다른 생물로 태어날 수 있게 되는 그런 구조를,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겁니다.

 

전시장 전체를 보았을 때, 왼쪽은 사람이 있고 어두운 분위기인 반면에 오른쪽은 밝고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데요. 어떤 의도로 이렇게 배열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까 큐레이션 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있는 데 지금 해도 괜찮을까요? 여러분, 뭉크 아시나요? 그 작가의 유명한 작품 중에 <절규>라는 작품이 있잖아요. 그 작품은 귀를 막고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나와요. 그 사람의 작품을 자세히 보면 뒤에 있는 사람들은 멀쩡하게 서 있고 배경도 멀쩡해요. 그런데 가운데에 있는 절규하는 인물만이 일그러지고 명확하지 않은 신체로 표현이 돼요. 사실 뭉크가 가정 환경이 좋지 못했어요. 실제로 신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조금 많은 타격을 얻고, 정신병을 가지게 되는데 그때 정신 병원에 들어가거든요. 그 안에 고흐가 있었던 거예요. 근데 이제 고흐의 그림을 보니 자기는 이렇게 힘들고 슬픈 그림을 그리는데, 그 고흐라는 사람은 그 정신 병원의 창살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을, <별이 빛나는 밤에>를 거기서 그렸대요. 어? 이 사람은 도대체 뭔데, 이렇게 힘겨운 와중에도 희망찬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번뜩 들더래요. 그래서 뭉크의 그 이후에, 후기작들을 보면 굉장히 밝고 해가 쨍쨍하고 그런 그림들이 많아요. 이런 식으로 같은 상황에 있더라도 자신이 정하는 길에 따라서 나의 신념에 따라서 다르게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쪽에서는(왼쪽을 가리키며) 자신의 슬픔, 고통 방황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왼쪽의 또 다른 곳을 가리키며) 이쪽에서는 순환하는 나은 쪽으로 점점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오른쪽을 가리키며) 이쪽으로 넘어가서는 아, 내가 정한 임의의 길로 가면은, 이거는 모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을 꼭, 한국에서 특히 그러잖아요. 네모난 상자에 나이에 맞춰서 전부 딱 일념화 된 것들을 진행하기를 권하잖아요. 예를 들면, 꼭 인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 한다, 그곳을 졸업했으면 인턴을 한 다음에 기업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 식으로 정해진 루트가 있는데, 그거는 누가 정한 건지 알 수 없잖아요. 특히나 예술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네모난 상자 안에 들어갈 수 없죠. 저희 마음이 달팽이 모양으로 생겼고, 제가 달팽이 모양의 상자를 가지고 있다면 그 안에 넣었을 때, 딱 알맞은, 상자가 될 거예요.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정한 네모난 상자에 나 자신을 맞춰서 끼워 놓고, 눌러 놓고 아니면 빈 곳을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꽉꽉 채워서 네모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느꼈을 때도 여기는 (오른쪽을 가리키며) 물이 많아 보여서, 물이라는 것의 속성 자체가 어디를 들어가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한, 그 안에서 어딘가 자유로운 듯한, 그래서 이 그림을 저쪽에서 이쪽으로 봤을 때 어딘가 자유로워진 느낌을 저도 받았던 것 같아요.

들면 ‘나는 조금 흘러가고 싶어’ 라는 목표를 세웠을 때, 그냥 흘러가는 사람은 어딘가 조급해져요. 아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될 것 같고 딱 계단을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왜 제자리에서 흘러가고 있지? 라고 슬퍼할 수 있죠. 내가 내 자신의 의미를 이렇게 흘러가는 사람이고 싶어, 라고 정한다면, 나는 이 목표와 이런 걸 다 이루고 있는 사람인 거잖아요. 그래서 쉬고 싶을 때는, 난 쉬고 싶은 사람이야 라고 생각을 해서 그냥 흘러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기 있는 <헤엄의 의미>를 보고 거북이가 있으니까 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또 그 위에는 새가 있다고 보이거든요. 그런 것이라면, 새가 물을 박차고 오르고 있는 모습인 건지, 새가 물속에 있는 모습을 그린 건지, 이 그림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기 있는 <헤엄의 의미>라는 그림은, 아까 다른 분께서, 저거 홍학 아니냐고 질문을 해 주셨던 분이 계시는데, 놀랍게도 저거는 위쪽이 머리가 아니라 아래쪽이 머리가 있는, 이렇게 다이빙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물 안으로 다이빙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쪽에서부터 인체가 명확했다가 점점 흐려지잖아요. 그래서 여기서는 어? 저게 사람인가? 뭐지? 헷갈릴 정도로 아예 형체가 흐려진, 그래서 물 안으로 점점 퍼져가는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홍학이나 새, 이런 얘기를 들었어서 그렇게 보는 것도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상시에 저런 해양 생물이나 동물을 관찰하시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맞아요. 해양 생물을 좋아하고요, 뭔가 물이라는 공간이 확 들어가 있으면 되게 답답하고 감옥 같고, 엄청 칠흑 같은 생각도 들지만, 생각을 잠깐만 바꿔보면 그냥 둥둥 떠 있으면 어디론가 계속 가고 있고 흘러가고 있잖아요. 그래서 물이라는 매개체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저쪽을 보면 비둘기가 있어요. 비둘기가 예전에는 굉장히 평화의 상징이었거든요. 이제는 너무 길거리에 많아진 나머지 혐오 동물이 되었잖아요. 실제로 잡아서 보면 별로 그렇게 더럽지 않고 엄청 깨끗하고 샤워도 잘하는 동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인간들의 행복감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날려 놓고 이제 와서 살찌고 바깥에 너무 많아지니까, 혐오의 동물이 되다니. 그런 점이 너무 슬프기도 했고요.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내가 나라는 사람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미로 저런 드로잉을 전시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인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 지금 작가명으로 모나지라는 이름을 쓰고 있고, 전지 제목도 <모나지 않은>인데, 앞으로도 이런 내용으로 전시를 하지 않더라도,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전시를 꾸준히 올리면서 그 아이덴티티를 지켜 가실 예정이신 건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모나지라는 이름을 쓰신 건지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비슷한 느낌의 전시를 해서, 확장해서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아, 그리고 약간 재밌는 점도 있어요. <모나지 않은> 이라고 봤을 때는 모나지 않지만, 모나지만 딱 떼어내면 되게 모난 거잖아요. 그런 점도 재밌는 것 같아요. 모난 사람이 모나지 않는 작업을 한다는 것.

 

작품에 잉어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포스터에도 등장하고 그림에도 등장해서요.

예전에 물고기를 많이 키우기도 했었어요. 제가 키우는 물고기는 너무 빠르게 세상을 떠나 버리더라고요. 그런데 인간의 욕심으로 계속 살리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이 작은 생물들은 바다가 아닌 이상 어항에서 오래 살 수 없으니깐 더 이상 떠나보내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서 그림에서는 영원히 살아있으니 깐 오히려 너무 좋아하고 사랑해서 그림에 많이 넣게 됐습니다.

 

작품에서 현대인의 ‘무의미성’ 관련된 주제로 작업을 했다고 하셨는데, 작가님 같은 경우는 삶 속에서 언제 의미를 가장 찾으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냥 뭔가 모든 사람들의, 그런 어떤 목표점처럼 갖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저의 가장 큰 의미는 행복인 것 같아요. 그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사소한 것에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항상 행복이 추상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존재하는 것 같지만 뭔가 닿을 수 없는, 근데 약간 저도 자유롭고 싶은데 그러기 쉽지 않잖아요.

자유를 자신 나름대로 재정의하면 나름 행복한 것 같아요.

 

저기 <순환> 이라는 작품에 시선을 맞추는 금붕어가 있거든요. 혹시 따로 의도를 갖고 그리신 건지 궁금합니다.

의도가 있긴 했는데, 다들 의외로 잘 알아주시더라고요. 근데 어느 정도 돌아가는 느낌이 있어요. 저 사이에서 관객들을 바라보면서, 관객까지 우리 함께해요 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 전시를 진행하면서 특히 관람객이 알아 봐줬으면 하는 게 있을까요?

다들 많이 알아봐 주시긴 했는데, 인간의 형체가 명확하다가 점점 흐려지는데,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지점을 바랐습니다. 오른쪽으로 넘어갔을 때, 왜 여기는 사람이 없지? 가 아니라, 그냥 이렇게 된 거구나, 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전시 준비하시면서 좋았던 점,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힘들었던 점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미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타투이스트로서 타투 작업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이런 식으로 할 게 너무 많아서 3시간씩 자고 나간 적도 있고, 아무래도 잠이 부족해서 조금 힘들었고요.

좋았던 점은 이렇게 전시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거예요. 특히 저는 학원도 그렇고 미술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조금 더 다양한 시각을 얻기 보다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완전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 까 했는데, 오늘 진행하면서 이런 것들이 많이 해소가 되고 재미있는 시각이 많아서 그런 점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전시 안내서에 시지프스 신화 이야기 적어 주시면서 매너리즘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 주셨잖아요. 작가님도 시지프스처럼, 그림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시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신 적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많이 와요. 특히 저 작품 같은 경우에는 정말 오래 걸렸거든요. 6개월 넘게. 특히 배경을 먼저 작업하면서 아무런 의미 없이 시작했거든요. 그다음 갈대를 그리고, 그다음 사람을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하나씩 그리는데 중간에 텀이 한두 달 넘어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가장 힘들었는데, 제가 사람이나 동물 같은 걸 넣는 걸 좋아하는 걸 이유가, 이 사람은 고뇌에 빠진 사람이야, 이 사람은 고뇌에 빠진 이유가 뭘까 하고 스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해요. 저 사람은 삶과 죽음 사이에 고뇌에 빠진 사람이겠구나.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작가님의 투영된 인물인지 또다른 누군가 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또 다른 누군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왜 저 사람은 고뇌에 빠졌는지 생각해 봐요.

 

저기 <라도>라는 작품은 어떤 의도로 저런 형태의 그림을 그리셨는지 궁금합니다.

저 <라도>라는 작품은 아까도 말했듯이 다른 사람들이 재단해서 잘려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 친구는 포기를 한 친구입니다. 그래서 저 상태에서 그냥 널브러진, 그래서 잘려진 그림 중에 제일 사람의 형태를 명확하게 가지고 있거든요. 아, 그래서 나는 여기가 끝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무의미한 상태에 빠져 버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저 친구가 ‘라도’라는 단점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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